'베르니케 영역'과 언어 능력
인간의 두뇌에서 언어 습득 능력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살펴볼까요?
먼저, 인지심리학에서 다루는 중요한 개념인 ‘베르니케 영역’을 알아봅시다. 독일 신경정신과 의사 칼 베르니케(Carl Wernicke)가 발견해서 ‘베르니케 영역’이라고 부르는데요. 혹자는 같은 독일의 심리학자 헤르만 에빙하우스(Hermann Ebbinghaus)가 그의 아내 베르니케(Bernice)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고도 해요.
이 베르니케 영역은 음성을 받아들여서 의미로 바꾸는 역할을 합니다. 즉, 학습이나 정보처리 과정에서 자극이나 정보를 받아들일 때 우리가 자각하지 않는 영역을 가리켜요. 이것은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데, 우리가 실제 인식하지 않아도 뇌가 스스로 정보를 처리하고 학습을 진행한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베르니케 영역을 다친 사람은 이해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요. 그들은 청각 이해력, 문장 독해력이 취약할 수밖에 없죠. 말소리가 정확하지 않거나 혀 짧은 소리를 내는 등의 장애는 거의 없고 문법 사용도 대체로 규칙적이에요. 하지만 그들은 의미 없는 말을 하거나 감각의 저하로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해요.
이런 사람들은 단어를 소리, 관계, 의미 등이 비슷한 것으로 대체해서 유창하게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표정을 짓지만 실제로는 못 알아듣습니다. 즉, 그들은 자신의 문제점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해요.
일반인처럼 유창하게 말하고 문법에 맞게 문장을 배열하는 듯이 보이지만, 의미 없는 내용을 나열하거나 다른 사람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증상을 가리켜 ‘베르니케 실어증’이라고 합니다. 스티븐 핑커가 쓴 『언어본능』에 따르면, 베르니케 실어증은 몇 가지 측면에서 ‘브로카 실어증’의 보완물이라고 하네요.
'브로카 영역'과 뇌의 언어 처리
그럼 ‘브로카 영역’이 무엇인지도 짚어보아야겠죠? 브로카는 뇌의 언어 처리와 관련된 영역으로, 프랑스 신경과학자 피에르 폴 브로카(Pierrel Paul Broca)의 이름에서 유래되었어요. 그는 19세기 후반, 뇌와 언어 기능을 연구하면서 뇌의 특정 부위가 말하기와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발견했죠.
브로카는 1865년에 ‘레보른’이라는 환자의 사례를 발표했어요. 20년간 간질을 앓은 그는 뇌 손상을 입고 오른쪽 신체를 사용하지 못해서 말하는데도 어려움을 겪었어요. 그는 “TAN, TAN, TAN….”이란 말만 반복했기에 이름 대신 ‘TAN’이라고 불렸죠. 비록 그는 ‘TAN’이란 말밖에 못 했지만 이 단어를 여러 의미로 사용했어요. 놀랍게도 그의 언어 이해 능력은 정상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브로카는 이 환자의 좌반구 뇌에서 장애를 유발하는 커다란 낭종을 발견해요. 이후에도 그가 관찰한 8명의 실어증 환자들 모두가 대뇌의 왼쪽에 장애가 있었죠. 결국 브로카는 ‘조음을 위한 능력’이 뇌의 좌반구에 있다고 결론 내립니다.
브로카 영역은 대뇌의 왼쪽에 위치하며 말하기의 중요한 기능을 담당합니다. 특히, 운동피질의 일부분과 연관되어 있어서 인간이 말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언어 관련 운동을 조절하죠. 그래서 브로카 영역이 손상되면 말하는 능력에 심각한 장애가 나타나는데, 이를 ‘브로카 실어증’이라고 합니다.
브로카 실어증을 겪는 사람은 몇 개의 단어로 짧게 말하고 ‘내용어’는 말하지만 문법적인 역할을 하는 보조적인 단어들, 즉 기능어는 거의 사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어요. 그들은 생각하는 내용을 밖으로 잘 표현하지 못해서 띄엄띄엄 말하며 적당한 단어를 고르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요.
이들은 청각 이해력이나 문장 독해 수준은 비교적 좋은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길고 복잡한 문장은 이해하는데 힘들어합니다. 브로카 실어증을 겪는 사람은 본인이 말하는 내용을 이해할 수는 있기 때문에 자신이 어눌하게 말하거나 틀린 단어로 말한다는 점을 인지해요.
스티븐 핑커에 의하면, 이런 환자들은 문법적인 구(句)도 유창하게 말하지만 그들의 말은 의미가 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조어나 대체 단어들로 가득하다고 합니다. 반면, 브로카 실어증 환자들과 달리 베르니케 실어증 환자들은 사물의 이름을 말하는데 일관된 어려움을 겪으며, 그들은 관련 단어 혹은 정확한 단어의 왜곡된 발음을 제시하죠. 엄밀하게 따지면, 브로카 영역이나 베르니케 영역이 무슨 일을 하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뇌의 영역과 문법 처리의 연관성
하지만 브로카 영역과 베르니케 영역 사이의 연결부 손상으로 인한 실어증 환자들의 경우, 문장을 따라 말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브로카 영역과 베르니케 영역 사이의 연결부는 온전하지만, 그 부위들이 나머지 피질 부분과 단절되어 고립된 환자들은 자발적으로 말하지 못할뿐더러,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지도 못한 채 들은 말을 소름 끼치게 되풀이한다고 보고되었어요.
그러면 브로카 영역이 문법 처리와 관련이 있을까요? 네. 관련 있습니다. 『언어본능』에 의하면, 두피에 전극 봉을 부착하고 문장을 읽다가 그 문장 속의 비문법적인 부분에 이르면, 좌반구 앞쪽에 부착된 전극 봉에서 뚜렷이 구별되는 형태의 전기 활동이 일어났어요. 그 밖에 몇 가지 기술을 이용해 혈류량을 측정한 연구에서도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언어로 말을 듣거나, 이야기하거나, 복잡한 문장을 이해할 때 이 부위가 밝아지는 것도 확인했고요.
그러나 브로카 영역이 문법 기관은 아닙니다. 브로카 영역의 손상만으로는 장기간 지속되는 심한 실어증이 대개는 발생하지 않거든요. 주변의 영역들과 그 아래 위치한 흰색 물질이 함께 손상되어야 하니까요.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몇몇 종류의 문법 능력은 브로카 영역이 손상되더라도 살아남는다는 점입니다. 즉, 언어에서 브로카 영역의 역할은 상당히 불분명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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